2006
여성안의 물 (Water in Women)

표면, 또는 액체로서의 몸

2006. 9.20 ~ 9.26

인사아트센터

[Artist's Statement]


작품의 주제는 물을 토대로 하여 표현되는 여성의 양면적인 정신세계이다. 이는 흐름과 단절, 진실과 왜곡, 감각과 감수성을 나타낸다. 이 복합적인 세계는 거대한 물속에서 충돌하여 무너지고 결국 하나로 용해되며, 여성의 몸 안의 물과 외부의 물이 만나 하나가 된다. 물은 삶과 죽음, 그리고 동시에 영속성을 나타내고 있다. 


물에 관한 믿음과 의식은 세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호주의 한 부족은 사람들이 죽어서 땅에 묻힌 후 비가 내리면 그 영혼이 그 물속에 스며들어 살게 된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리고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은 갠지스강을 신성시 여겨 한쪽에서는 그 물을 마시고, 죄를 씻기 위해 강에서 목욕을 하고, 동시에 강물에서 장례를 치른다. 시체가 떠다니고 화장을 하는 장소인 갠지스강은 삶과 죽음이 한데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티베트에서는 수장하여 물고기가 시체를 뜯어먹으면 영혼이 물 속에서 자유로운 물고기처럼 자유로워진다고 믿는다고 한다. 


여성과 연관된 물은 인간 몸속의 물로 구체화된다. 오줌, 피, 눈물은 인간의 감정과 연관된 물의 상징들로 표현된다. 오줌은 오물이 가지는 부정적인 개념과 동시에 초자연적인 에너지로서의 긍적적인 개념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설화에 기인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유신의 누이 보희가 자신의 오줌이 홍수가 되는 꿈을 꾸었는데, 동생 문희에게 비단치마를 받고 그 꿈을 팔았다. 얼마 후 장차 왕이 될 김춘추가 문희와 혼인하고, 그녀는 신라의 왕비가 되었다. 둘째, 피는 상처, 파괴 그리고 죽음을 상징한다. 셋째로, 눈물은 고통스럽고 불안정한 감정을 상징하고 있다. 


나의 작품은 여성의 내면과 외면을 형상화한다. 작품 재료인 실크 오간자는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만들어내는 투명한 피부와도 같다. 여성의 나신을 그린 선화는 직물 위에서 세 가지 형태의 물 이미지에 의해 용해되고 있다. 다양한 색상의 디지털 텍스타일 프린팅(DTP)의 레이어를 통해 여성의 복잡한 정신세계를 상징화했다. 작품의 소재로는, 변형되고 왜곡된 여성의 나신과 긴 줄기를 가진 연꽃, 추상적으로 재구성된 척추, 부레, 비늘, 실핏줄, 세포조직들을 사용했다. 이들은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연속성을 상징한다. 또한 과장되게 늘어난 여성의 육체는 인간의 갈등과 고통의 표현이다. 향으로 천을 태우는 기법(Incense-burning)은 연기, 재, 산소와 같은 요소들을 융합시켜 인생의 반복을 표현함과 동시에 제의적 형태로서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작품 의도는 계속되고 반복되는 그러나 또 한편 현세적이고 고통스럽고 불안정한, 인생의 과정을 재창조함에 있다. 



[평론글]


위에서 아래로 드리워지는 천은 반투명한 표면에 다양한 형태의 액체를 무늬로 새기며, 그 위에 잉크로 그려진 여인들은 그 사이를 유영하고 있는 듯 보인다. 김나정의 작품에서 액체는 바다같은 대자연 뿐 아니라, 피, 오줌, 눈물같은 체액도 상징하고 있어, 그 속을 부유하는 여인들이 해방과 구속, 삶과 죽음 사이에서 떠돌고 있음을 예시한다. 바탕천의 질감과 어우러져 넘실대는 듯한 물결은 세포질을 이루는 진한 물기가 되고, 삶의 기운이 충천한 장면은 침수 및 해체 상태와 교차된다. 김나정의 많은 작품에서 서로 구별되는 다양한 층위들-소우주/대우주, 육체적/심리적, 삶/죽음 등-은 극과 극 사이의 에너지 낙차에 위해 급격하게 요동친다. 그 작품들은 경계 및 그것의 위반의 문제를 다룬다. 이 전시에서 많이 사용되는 재료인 실크 오간자는 피하조직 층이 비치는 듯한 피부의 느낌을 준다. 그 피부는 자율적으로 닫혀진 유기체적 굴곡 및 외곽선을 가지지 않는다. 천의 경계면에 의해 잘리거나 기이하게 뒤틀린 여인들의 포즈도 조화로운 유기적 질서와는 거리가 있다. 


또 다른 작품에서 보이는 재와 실핏줄, 즉 무기질과 유기적 그물망의 결합이나 반신반어(半身半魚) 등의 이미지도 경계를 넘나드는 애매한 형태들이다. 김나정은 국내에서의 첫개인전 [Water in Women] 에서 물과 여성에 관련된 인류학적 상상력을 풀어놓는다. 디지털 텍스타일 프린팅에 의해 만들어진 물결무늬, 유영하는 여체, 부레나 비늘 등 물고기의 기관, 연꽃 등의 모티브는 물과 관련된다. 오줌, 피, 눈물을 상징하는 세 가지 색상의 액체가 아래로부터 스며드는 작품은 육체 및 감정과 연결된 물의 또 다른 이미지이다. 김나정의 작품에서 물은 무엇보다도 여성의 몸의 유체성과 겹쳐진다. 유체는 고체와는 달리 명확히 정해진 형태나 분류에서 벗어나 있는 애매한 존재방식을 가진다. 물이 생명과 죽음, 창조와 파괴, 재생과 해체라는 양가적 의미가 있듯, 체액 또한 마찬가지이다. 작가에 의하면 노란색으로 상징되는 오줌은 오물이 가지는 부정적인 개념과 동시에 초자연적인 에너지로서의 긍정적인 개념을 갖고 있다. 그것은 오줌으로 홍수를 만들었다는 동생의 꿈을 사서 신라의 왕비가 된 신라시대의 설화에서 온 것이다. 피는 출산과 죽음, 눈물은 고통과 정화 등을 상징한다. 


김나정의 작품은 서로 반대되는 듯한 이미지와 내용을 다룬다. 서로 나뉘어져 있는 것 사이에 걸친 불순한 연결망은 금기와 위반에 근거하는 종교적인 차원으로까지 뻗어나간다. 3개가 한 조를 이루는 작품 ‘잃어버린 연결고리’는 떨어진 것을 다시 연결하는 종교의 어원적 의미를 떠오르게 한다. 동시에 그것은 투명 아크릴 사이에 끼워져 있어서 마치 잔해의 과학적 표본같은 효과를 줌으로서, 오늘날 종교와 과학 간에 벌어져 있는 심연 사이에 놓은 미지의 영역을 예시한다. 이 전시에서 향으로 천을 태우는 기법으로 만들어진 작품의 경우, 제의적인 느낌을 강하게 준다. 실크 성분을 이루는 단백질이 연소됨으로서 황토색 그을림이 만들어지고, 우연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로 변화한다. 그것은 색색으로 프린트되거나 그려진 다른 작품과는 다른 회화적 효과가 나타난다. 척추, 부레, 비늘, 실핏줄, 신체 기관의 일부 등이 타다 남은 찌꺼기같은 형태와 조합되어 있는 작품은 유기체의 해체가 극단으로 행해진다. 여기에서는 몸의 경계는 물론 성의 경계도 사라진다. 본래 여성은 이분법 속의 한 향으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김나정의 작품에서 물과 여성은 이분법의 세계를 융해시키는 파괴적인 힘을 예시하는 매개 고리가 된다. 페미니즘 이론가 엘리자베스 그로츠는 이원론이란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몸과 마음처럼, 두 가지 상호 배타적인 어떤 것이 있으며 이런 것들이 우주라는 보편성과 주체라는 특수성을 구성한다는 믿음이라고 정의한다. 이분법적인 사고는 두 가지 양극화된 용어들을 서열화시키고 하나가 특권적인 용어가 되게 하고, 다른 하나는 억압되고 종속적이며 부정적인 상대편이 되도록 만든다. 마음/몸의 관계는 이성/정열, 분별력/감수성, 안/바깥, 자아/타자, 깊이/표면, 실재/현상, 매커니즘/활력론, 초월/내재, 시간성/공간성, 심리학/셍태학, 형식/질료 사이의 구분과 상호 관련되어 있다. 김나정의 작품에 정념을 투사하기도 하고, 표면으로 펼쳐진 몸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것은 깊이와 내부를 싸고 있는 것이 접혀지고 교차되는 방식에 따라 깊이와 내부를 싸고 있는 것이 접혀지고 교차되는 방식에 따라 깊이와 내부가 산출되는 형식을 가진다. 이러한 일원론은 주체성이 정신적인 깊이와 육체적인 표피의 결합이라는 이원론을 해체하면서 몸의 무한한 유연성과 개방성을 지향한다. 반면 전통적인 이원론에서는 여성은 남성적 충만함에 대한 결여, 결핍, 부재, 잃어버린 장기로 코드화되어 왔다. 여성의 임신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이질적 타자를 체내에 품어내는 모성은 경계가 불확실한 존재이다. 모성으로 대변되는 여성성은 고유성과 동일성을 부여받지 못한다. 물 역시 그 자체로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타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소극적인 물질이다. 그래서 물은 타자를 위한 존재로서, ‘분화되어 있는 모든 구체적인 만물의 어머니’(헤겔)라고 칭해진다. 김나정의 작품에서 물과 여성은 존재태를 끊임없이 바꾸면서 모든 경계지워진 것들을 넘나드는 존재라는 공통적 속성을 가진다. 이러한 경계 흐리기는 구분과 계급화를 지향하는 가부장적 문화가 두려워하는 것이다. 김나정의 작품은 경계선이 침수된 모호한 공간 속에서, 몸의 가변성과 연결되는 독특한 여성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녀의 작품에서 여성과 물은 단순히 소재 차원의 결합을 넘어, 내재적인 면이 있다. 그것은 여성 몸의 액체성과 관련된다.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뤼스 이리가라이는 여성의 몸을 액체적인 것으로 정의한다. 그녀에 의하면 여성의 몸은 부재나 결핍으로 구성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복합적이고 통제 불가능하며 스며드는 액체로 구성되어 있다. 지배적인 철학적 모델에 의해 타자화된 액체성은 통제 불가능하고 비결정적인 것에 흡수당하는 것에 대한 남성적 불안을 투사한다. 흐르는 것, 유동적인 것은 문화적으로 재현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으며, 암묵적으로 여성성과 육체성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사물의 존재를 단단한 실체로 개념화하려는 문화에서 억압되어 왔지만, 어느 순간 모든 형태를 삼키는 무정형성이자 모든 질서를 위협하는 무질서로 돌변할 수 있다. 늘어뜨린 천 위에 그려진, 또는 그 자체가 몸의 내부와 외부를 막처럼 나누는 피부같은 느낌을 주는 김나정의 작품은 몸의 열려진 지평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액체적인 몸’과 연관된다. 액체적인 몸을 강조하는 이리가라이는 [근원적 열정]에서 이러한 몸이 열림을 지향하며, 그것은 반영도 흉내도 다시 만들어진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어쩌면 만들어진 것조차도 아니다. 열림은 교환을 허용하고 움직임을 보장하며 소유나 소비의 포화를 막는다. 그러나 재현될 수 없고 객체로 만들어질 수 없으며, 어떤 위치, 또는 논제로 재생산될 수도 없는 상태이다. 


여성의 몸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유동적이고 변화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물과 여성은 파괴적인 속성을 가진다. 온몸이 뒤틀린 채 침수되는 듯한 여인의 상이나 태워진 형해로 어류의 기관들과 함께 추스러진 김나정의 작품에서 어른거리는 것은 죽음의 그림자이다. 물은 인류학적 상상력에서 모든 형태에 선행하는 잠재적인 모태이지만 동시에 모든 형태를 카오스로 복귀시키는 파괴적인 힘을 지닌다. 종교학자 엘리아테에게 물은 무질서, 분화되지 않은 흐름으로, 생명과 죽음을 동시에 암시한다. 철학자 바슐라르에게 물은 여성적인 원소이다. 그것은 부드럽고 따뜻하며 축축한 물질적 이미지를 들면서 젊은 처녀의 액체적 본질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광대하게 퍼져서 무한 속에 투영된 어머니인 자연으로 확대된다. 물은 여성과 마찬가지로 파괴와 동시에 생명을 싹트게 하며, 공포와 매력을 결합시킨다. 김나정의 작품에서 액체에서 유영하는 듯한 여성은 바다의 물거품에서 탄생한 아프로디테의 이미지가 있다. 동시에 부레와 비늘의 이미지가 있는 반인반어의 이미지는 지상의 남자들을 유혹하여 죽음과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는 힘을 지닌 인어나 사이렌 같은 신화적 여성을 연상시킨다. 


여기에서 물은 ‘가장 여성적인 죽음의 물질’ (바슐라르) 가 된다. 바슐라르는 물이 항상 흐르며 떨어지며 그리고 수평적인 죽음으로 끝난다고 말한다. 물을 응시한다는 것은 흘러간다는 것, 분해한다는 것, 죽어간다는 것이다. 물과 죽음의 결합의 주요 매개자인 여성은 아름다움으로 고양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여성은 삶과 주는 자이면서 삶을 빼앗는 자이고, 아름다움과 죽음이 결합하는 두 얼굴의 존재인 것이다. 김나정의 작품에서 천은 몸의 내부와 외부를 나누는 유동적인 표면이 된다. 그로츠에 의하면 몸의 표면인 피부는 내부와 외부 사이를 교환하는 공간이며, 외부가 몸 내부로 전환되는 지점이자, 몸의 내부가 몸 바깥으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몸 표면은 지각이 제공하는 정보를 선별하고 골라내는 스크린으로 작용한다. 이 막은 몸의 내부와 외부를 명확히 경계짓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액체적이다. 이리가라이에게 액체는 여성의 몸 뿐 아니라 여성적 열락(悅樂)의 무정형성이다. 액체는 어머니의 몸 안에서 태아가 거주하는 양수막과 같은 요소이며, 유아의 몸에 지속적으로 각인되는 수위watermark가 된다. 이 원초적 공간을 지배하는 것은 시각이 아니라, 촉각인데 그것은 점액질과 관련이 있다. 점액질은 주체성과 객체성 사이의 거리유지가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비결정성의 특징을 지닌다. 


천을 염색하듯이 불확실한 경계막을 스멀스멀 침식하는 것은 바로 체액이다. 김나정의 작품에서 푸른색으로 상징되는 눈물은 배설 및 생식과는 무관하다는 의미에서 정신적이고 정화의 의미가 담겨있으나, 오줌이나 피는 오물, 즉 주체와 객체, 안과 밖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위험한 힘을 상징한다. 경계를 넘나드는 오물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 인류학자 메리 더글라스는 [청결과 위험]에서 청결하고 고유한 몸, 순종적이고 법을 준수하는 사회적인 몸이 출현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댓가를 말한다. 오물, 또는 비체abject는 체계와 질서에 언제나 잠재적인 위협이 된다. 김나정의 작품에서 피, 오줌, 눈물은 몸의 배설물 내지 부산물이다. 비체는 더 이상 고유의 통일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주체의 상태를 확인시킨다. 크리스테바에 의하면 비체는 유동적으로 흐르면서 고정된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매혹과 혐오, 사랑과 공격성, 주체와 타자, 안과 밖의 경계선을 위반한다. 체액은 몸과 안과 밖의 경계가 확실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그것은 자율성과 자기동일성을 갈망하는 주체의 욕망을 침식한다. 


그것은 사물, 실체, 객체의 견고성을 흐릿하게 하며, 통제를 벗어나 바깥과 교통한다. 아브젝트를 탄생시킨 금지의 논리는 원시사회에 있어서 성스러운 것의 역할과 더러움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온 인류학자들이 밝히고 있다. 이들에 의하면 오염은 사회적 합리성이라는 논리적인 질서를 위반한다. 그것은 동일성의 외부로부터 온 위험을 표상한다. 즉 비자아로부터 위협당하는 자아, 외부환경으로 위협받는 사회, 죽음으로부터 위협받는 삶처럼 말이다. 경계를 넘나드는 유동성의 세계는 상징 세계에서는 만족할수 없는 의미의 바깥, 곧 타자인 여성의 자리이다. 크리스테바는 사회 속에서 오염의 의식화 과정은 성별의 엄격한 구별에 대한 강박관념적 관심, 달리 말하면 남성을 여성보다 우위에 두는 것에 대한 관심과 연계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고유한 한계에 대한 위반, 누군가 한계에서 비체를 인격화하면서 정화작용을 약속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성이다. 그러나 남성은 같은 경우 비체를 인식하고 폭로함으로서 그것을 정화시킨다. 액체 속에서 육체에 대한 최초의 지형도가 그려지는 김나정의 작품은 고유한 것의 부재, 아브젝트한 것을 동반한다. 끊임없이 흐르면서 존재를 변모시키는 물과 유체와도 같은 몸의 언어는 교차된다. 그것은 여성의 몸이 지니는 유체성과 촉각성, 애매함, 무정형을 표현함으로서 모든 한계를 넘어 흘러넘치는 삶의 근원과 맞닿아 있다.


by 이선영(미술평론가) _ 표면, 또는 액체로서의 몸



※ 모든 미술 작업물에 대한 권한은 김나정 작가에게 있으며, 무단 복제 및 배포는 금지합니다.

※ Author Kim Najung has the authority to all art works, and unauthorized reproduction and distribution are prohibited.

ARTIST 

KIM NA JUNG

ARCHIVE.


Tel. +82 010-9121-0497
E-mail. njungkim@gmail.com
Location : Seoul, Korea

/

ARTIST KIM NA JUNG